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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rtwork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피카소가 인정한 20세기 최고의 조각 예술가, 조각을 통해 우리에게 인간이란 무언인가 왜 존재하는가를 묻는 예술가 , 세상에서 가장 비싼 조각품을 만들어낸 예술가, 가장 철학적이면서 가장 예술가 다운 예술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가 소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코메티는 1910년 10월 10일 이탈리아 국경과 인접해있는 스위스 쿠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스위스에서 유명한 후기 인상주의 작가 였습니다. 그 덕분에 자코메티는 일찍이 미술을 접할 수 있었죠. 그런 그는 아버지의 밑에서 있는 그대로의 그림을 그리는데 익숙해졌습니다. 자코메티의 가족들은 모두 서로를 그려주고 풍경도 그리면서 모두 예술의 길에 들어오게 됩니다. 자코메티는 그렇게 자라서 제네바 스쿨의 순수미술 전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당시 자코메티는 조각가가 아니라 화가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후기 인상주의 느낌의 작품을 많이 남기게 됩니다. 그렇게 제네바에서 공부한 후 자코메티는 19살이 되던 해 기차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거기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의 이름은 판 뫼르소였죠 네덜란드 출신으로 자코메티와 같은 칸에서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비롯해 다양한 지식이 많았던 자코메티는 한 번에 뫼르소를 홀려버립니다. 뫼르소는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자코메티를 존경하게 되었고 다양한 얘기를 하며 기차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가 다른 둘은 결국 서로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뫼르소는 언뜻 자코메티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뫼르소는 자코메티를 찾기 위해 신문에 자코메티를 실었습니다. 그 둘은 다시 만나 기차여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가 뫼르소의 몸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뫼르소는 아픈 몸으로 끙끙 앓다가 내일이면 조금 괜찮아질 거야 하고 다음날 사망했다고 합니다.

기차 칸 안에서 방금까지 깊은 대화를 하던 상대가 죽어가는 모습을 본 자코메티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생각이 그를 덮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죽은 뫼르소를 회상하며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사물(오브제)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목이 잘린 여인> -알베르토 자코메티-

 

 

그는 죽음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오다가 다음해 파리로 건너가 앙투안 부르델 밑에서 조각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부르델은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으로 유명한 로댕의 조수였습니다. 자코메티는 그런 그 밑에서 조각을 열심히 배우고 그 시기 신진 작가들과도 친분을 맺기 시작합니다. 호안 미로나 피카소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그들과 교류를 하는 자코메티는 그들의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에 매료됩니다. 위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은 작품으로 <목이 잘린 여인>이라는 작품입니다. 제목이 참 무시무시합니다. 딱 봐도 어떤 형상인지 알 수 없는 모습이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과 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자코메티의 작품들은 호안 미로의 작품같이 기호와 조형들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그에게 다시 죽음이라는 고민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1933년엔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 뒤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 오틸리아가 사망합니다. 그 후로는 자코메티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죠.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가장 끔찍한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이렇게 자코메티는 죽음이라는 것에 한 없이 가까워졌습니다. 이렇게 그는 죽음 그리고 인간의 존재를 작업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코> -알베르토 자코메티-

 

이제 이 시기에는 우리가 흔히 아는 자코메티의 작품들인 <걷는 사람>,<가르키는 사람>등 앙상한 인간의 형태를 한 조각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는 그들 중 <코>라고 하는 작품입니다. 엄청난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듯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그의 코는 저 사가형 틀을 벗어나기 위한 것처럼 늘어나 있죠. 저 사각형의 죽음의 세계에 갇히고 있지만 어떻게든 살고 싶어 코를 고통스럽게 늘리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이렇습니다. 코는 냄새를 맡는 인간의 기관입니다. 그리고 냄새는 살아있는 생물에게만 나는 후각적 감각이죠. 하지만 저 조각은 사각형에 갇혀 죽어가고 있습니다. 죽은 자신에게서는 냄새가 나지 않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인정받기 위해, 자신이 아직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코를 늘리는 고통을 참으며 저런 상태가 오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이건 순전한 저의 생각이니 각자만의 해석을 만들어 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세 사람들> -알베르토 자코메티-

 

 

<걷는 사람> -알베르토 자코메티-

 

저렇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가다듬고 인간의 존재와 죽음에 대해 탐구를 한 결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코메티의 사람이 탄생합니다. 작품을 보면 부식되고 있는 인간을 보고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그의 기법에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조각의 경우 기본 틀에서 점토를 붙여가며 안에서 밖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소조와 대리석과 돌 같은 재료를 밖에서 안으로 깎는 조각이 있습니다. 자코메티의 경우 이 두 가지를 다합니다. 그는 점토를 틀에 붙여가며 사람의 형태를 만들고 손으로 살을 떼면서 지금 작품과 같은 질감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자코메티와 사르트르>

 

자코메티와 사르트르의 만남은 참 신기한 만남이었습니다. 술집에서 자코메티가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한 사내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술값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자코메티는 여려운 부탁이 아니라는 듯 술 값을 내주고 합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사내가 실존주의를 대중에게 알린 사르트르입니다. 이렇게 만난 둘은 엄청난 절친이 됩니다. 평소에도 죽음, 인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자코메티는 사르트르와 이야기가 정말 잘 통했죠. 그래서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자코메티 작품세계의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요. 자코메티 작품의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존주의의 철학 내용을 아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실존주의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란 인간의 존재, 인간적 현실의 의미를 구체적 모습에서 다시 파악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위와 같이 정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질이란 목적성, 기능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계단은 우리가 밟고 올라가는 것, 우리가 층을 올라가게 도우는 건축물이라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형태가 어떻든 그런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계단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본질에 앞서 실존이 되기에 일단 인간은 태어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어떠한 목정 성을 가지고 있지 않죠. 우리의 탄생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세상에 던져진 것뿐이죠 우리는 사실 탄생한 그 자체 실존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목표를 만들려 하고 어떤 무언가를 이루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합니다. 자코메티의 작품과 같이 앙상한 본질로 부식되는 몸을 이끌고 끊임없이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죠. 이것이 바로 자코메티와 사르트르가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바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인간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같은 질문들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코메티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조각가라고 칭송받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입니다.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죠. 그의 작품들의 모습 표정들을 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코메티와 피카소>

 

다음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예술가 피카소와의 만남입니다. 피카소는 자코메티가 앙투안 부르델의 아틀리에에 갔을 때 파리에서 만납니다. 그들은 서로의 예술을 이야기하고 피카소는 자코메티의 생각과 철학에 매료됩니다.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한 피카소를 매료시키다니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피카소는 자코메티와 나이 차이가 꽤 나지만 그의 비평을 듣고 싶어 항상 졸졸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만남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유는 바로 피카소의 괴팍한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참 싫어했습니다. 그러는 어느 날 피카소가 길거리에서 아들에게 미친 짓을 하라고 시킵니다. 그로 인해 거리에 사람들이 겁을 먹고 경찰에 신고했죠. 경찰은 바로 피카소의 아들을 감옥에 가두려고 했습니다. 그때 자코메티는 피카소의 행동에 경멸을 느끼며 감옥에 들어갈 사람은 저 아이가 아닙니다. 바로 이 몰상식한 아버지가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피카소를 위대한 예술가라 부르지 않고 천재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서로의 감정을 상한 둘은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죽기 전 정말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 중 하나가 자코메티였다고 합니다. 정말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나의 생각>

 

저는 개인적으로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와 철학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인간의 존재, 죽음 이러한 주제를 정말 위대하게 작품으로 잘 표현 한 작가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예술가들 중 가장 예술가 다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알면 알 수 록 자코메티의 매력은 대단하죠. 자코메티의 작품을 더 심도 깊게 관람하고 싶다면 실존주의 철학에 대해 공부하고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확실히 예술가의 세계를 알고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크니까 말이죠.